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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전환이란 관점에서 본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방향 이필렬 (방송통신대, 과학사/화학) 1. 세계에너지위기 2. 한국의 에너지낭비현황 3. 신자유주의에 대한 평가 4. 에너지전환을 위한 개편
1. 세계 에너지 위기 근대 산업문명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화석 에너지원이 유한한 것이고, 대량 채취로 고갈되어 간다는 것은 자원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자원 연구자들은 인류가 앞으로도 계속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화석연료를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각 연료의 매장 연한을 석유 40년, 가스 60년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고갈될 것은 40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석유인데,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원 중에서 석유 의존도가 35.5%에 달하고 있어 석유의 부족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상당한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예측된다. 20세기 초부터 발견되기 시작해서 사용량이 점차 늘어 온 석유는 앞으로 3,4년 후면 산유량이 정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석유를 품고 있는 유전의 발견은 20세기 초부터 그 규모가 점차 늘어나서 이미 1960년대 중엽에 가장 많은 유전이 발견되었고, 그후부터는 점점 줄어들어 최근에 와서는 아주 드물게 새로운 유전이 발견되고 있다. 석유자원 연구자인 캠프벨의 분석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견된 유전과 앞으로 간간이 발견될 유전의 석유 부존량을 모두 합하면 약 1800 기가배럴에 달하는데, 그 중에서 1999년까지 인류가 퍼내어 쓴 석유의 양은 822 기가배럴로 부존량의 거의 절반 가까운 양이 된다. 켐프벨이 지금까지 석유 채취량의 증가추이를 분석해서 만들어낸 증가 모델에 따르면, 채취량은 유전 발견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연도보다 40년 정도 늦게 정점에 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2005년 경에 전세계의 산유량이 절정에 달했다가 그 다음부터는 점차 줄어드는 것으로 된다. 캠프벨이 내놓은 연구에서 실제 산유량의 증가곡선을 분석하면 대체로 이론적인 증가 모델과 맞아떨어지기는 하지만, 1970년대 초의 오일쇼크나 1990년의 이라크-쿠웨이트 전쟁 등 국제정치적인 변동으로 인해서 인위적으로 석유 소비가 억제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이 기간으로 들어서면 이론적 수치로부터 약간 벗어나는 편차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적인 분석에서는 이미 1990년대에 산유량이 정점에 달하지만, 실제로는 2005년 경에 산유량이 최고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는 것이다. 이론적인 모델에서는 산유량이 정점을 지난 후 급격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계산이 나오는데, 실제의 경우에는 모델에 따를 경우보다는 완만하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5년 경에 산유량이 최고조에 달한 후 서서히 줄어든다고 해서 전세계적인 석유 부족 현상이 상당히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나 닥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산유량이 완만하게 떨어진다고 해도 캠프벨의 곡선에 따르면 해마다 약 3%씩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정점에 달한 후 15년만 지나면 산유량은 절반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추세로 산유량이 감소하면 2010년 경에 이미 산유량이 현재와 비교해서 10% 이상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석유는 운송, 난방, 전력생산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석유화학 산업에서도 필수적인 재화가 되었다. 이와 같이 인류의 석유 의존도가 대단히 높기 때문에, 석유 부족 현상이 일어나면 그 정도가 그다지 심하지 않다고 해도 상당히 큰 파장이 전세계에 미칠 수 있다. 2000년 9월의 경우 OPEC가 수십만 배럴 감산한다고 결정한 후 원유가가 20달러대에서 35달러가 넘게 치솟았는데, 이는 실제의 석유부족보다는 석유라는 필수품이 부족하게 될지 모른다는 심리적 패닉으로 인해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2000년 9월 OPEC가 석유 감산을 결정했지만 이 결정이 실제로 시행되었는지도 미지수이고, 또한 OPEC가 감산하기로 결정한 하루 수십만 배럴 정도의 양도 전세계의 석유 소비량과 비교하면 아주 적은 않은 양이었다. 2000년의 하루 평균 산유량은 6000만 배럴이 넘었는데, 그 중에서 60만 배럴이라고 해야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양이다. 그러므로 2000년 9월에 몰아닥친 석유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실제적인 석유 부족보다는 부족이 달칠 가능성이 있다는 심리적 공황 현상으로 인해서 일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석유가 약간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러한 혼란이 벌어졌는데, 만일 캠프벨의 분석대로 2005년 경 산유량이 정점에 도달한 후에 해마다 3%씩 산유량이 줄어든다고 하면, 실제 그후 수년간은 석유 부족이 그다지 심하지 않다 하더라도 석유부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석유가격 폭등, 국제정치적 갈등, 세계경제의 파탄, 일국 내의 정치적.경제적 혼란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발생하리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갈등과 혼란의 양상은 해가 갈수록 심해질 것인데, 혼란이나 갈등의 정도는 각 나라에서 이러한 상황의 도래에 대해 얼마나 대비했느냐에 따라 크게 다를 것이다. 에너지 시스템을 화석연료에 기반한 것으로부터 지속가능한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한 것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착실히 수행한 나라는 석유부족으로 인한 혼란을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훨씬 완화된 형태로 겪게 되리라는 것이다. 약간의 석유 부족 또는 그럴 가능성만으로도 갑작스러운 가격폭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2000년 9월 국제 유가의 상승으로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가장 첨예하게 보여주는 것은 2000년 12월과 2001년 1월에 걸쳐서 일어난 미국의 가스가격 폭등이다. 현재 미국의 가스시장에 공급되는 가스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 미국의 가스 생산량은 1970년대 초에 정점에 달한 후 서서히 감소해왔고, 반면에 수입은 80년대부터 점차 증가해왔다. 수입되는 가스는 거의 전부 캐나다에서 생산된 것인데, 캐나다에서 최근에 자국에서 사용되는 가스의 양이 증가하면서 수출 물량을 제한함에 따라 미국에 가스 공급 부족 현상이 일어났다. 물론 부족한 물량은 전체 사용량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에 불과했지만, 이는 가스가격의 급격한 폭등을 초래했다. 그 결과 2000년 초에는 1000 세제곱피트당 2달러에 지나지 않던 가스가 2001년 초에는 1000 세제곱피트당 10달러가 넘는 가격폭등이 일어났던 것이다. 2001년 1월에 벌어졌던 미국의 캘리포니아 전력 비상사태의 원인은 부분적으로는 가스 화력발전을 통해서 생산되던 전기가 가스가격의 폭등으로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환경오염을 억제하기 위하여 석탄이나 석유발전시설의 건설을 제한해 왔는데, 이는 캘리포니아의 전력생산이 주로 가스발전소에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고, 미국의 가스가격이 폭등하자 전기가격도 폭등하여 전력 비상사태까지 초래되었던 것이다. 석유 부족 현상이 언제 도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에너지 자원 연구자들 사이에 견해차가 있다. 캠프벨을 비롯한 민간기관의 연구자들은 대체로 이른 시기에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비관적인 견해를 보이는 반면, 정부기관의 연구자들은 그렇게 일찍 부족 현상이 도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약간은 낙관적인 전망을 한다. 비관적으로 보는 연구자의 경우에는 10년 후면 에너지 부족이 피부로 감지할 정도로 심각해질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20년은 지나야 부족현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어느 정도 낙관적인 견해를 펴는 연구자들도 있다. 그러나 비관적인 견해를 펴는 연구자든 낙관적인 주장을 하는 연구자든 모두 화석에너지 부족현상이 반드시 나타나리라는 면에서는 일치하고 있고, 또한 이들은 속도에 대한 견해 차이는 있지만 재생가능한 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에도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에너지 고갈로 인한 위기에 대비해서 현재 가장 활발하게 에너지 전환을 수행하고 있는 나라는 유럽연합의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등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에너지자원의 고갈과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기후변화라는 문제를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모두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풍력발전으로 이미 전체 전기소비량의 10% 가까운 전기를 생산하고 있고, 2030년에는 전체 전력의 50%를 풍력으로 충당할 계획을 세우고 풍력발전 확대를 대단히 야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밖에도 태양에너지와 바이오매스 이용 확대를 위한 프로그램도 수립해서 수행해가고 있다. 덴마크는 북해에 유전을 보유하고 있어 석유를 수입하지 않는데도 이와 같이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의 절박성을 인식하고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현재 재생가능 에너지가 일차에너지의 2%, 전기의 5%를 담당하고 있는데, 독일 정부에서는 이 비율을 2010년 경에는 두배로 늘리고, 그후 해마다 10%씩 늘려가서 2030년에는 30%, 2050년에는 50%로 증가시킨다는 장기 계획을 실행해가고 있다. 이 계획은 화석 에너지자원 고갈에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온실기체 배출 감소라는 목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독일에서는 2005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기체 배출량 25% 감소를 목표로 하고 있고, 그후에는 10년마다 10% 이상씩 줄여나가서 2050년에는 최종적으로 80% 이상의 감소를 달성하려 하고 있다. 1999년 10월에 독일 환경부의 위탁을 받아서 나온 "재생가능 에너지의 이용을 통한 기후보호"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에는 1995년을 기점으로 2050년까지의 에너지 시나리오가 나와 있는데,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에 전체 에너지 소비는 40% 감소하고 재생가능 에너지의 비율은 60%에 달하게 된다. 이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면 현재 독일에서 연간 8억9000만톤씩 배출되는 온실기체는 2010년에는 6억5700만톤, 2030년에는 4억6000만톤, 2050년에는 2억톤으로 줄어 총 80%가 감소하게 된다. 독일 정부에서는 이 과정을 두단계로 나누어서 접근하고 있는데, 첫 번째 단계인 처음 15-20년간은 에너지 소비 절약과 함께 열병합발전의 확대에 주력하고, 그 다음 단계인 나머지 30여년간은 재생가능 에너지의 확대에 힘을 쏟는다. 첫 단계에서 열병합발전은 전기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현재의 9%에서 25-30%로 증가하게 되지만, 이에 반해서 이 기간 동안 전체 일차에너지 중에서 재생가능 에너지의 비율은 10% 정도로 아직 크게 증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에서는 재생가능 에너지 중에서 풍력과 태양광 전기의 비율이 급격히 늘어나서 2050년이 되면 전체 전기소비 중에서 재생가능 에너지로부터 생산된 전기의 비율이 63%로 늘어나게 된다. 이와 같이 재생가능 에너지의 장기간에 걸친 확대를 위해서 독일 정부에서는 1990년에는 `전력매입법`을, 2000년 4월부터는 `재생가능에너지법`이라는 법을 제정하여 재생가능 에너지의 시장 진입을 진작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도입했고, 이 법에 힘입어 독일에서는 풍력, 태양에너지, 바이오매스 등의 재생가능 에너지 이용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2. 화석에너지 고갈에 대비한 한국의 준비 상황 한국인들의 에너지 고갈과 기후변화로 인해 닥쳐올 위기에 대한 인식은 아주 낮은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 시민들은 대체로, 에너지란 그저 존재하는 것이고 에너지 구입비용이 문제이지 전기코드를 통해서나 주유소를 통해서 마음대로 사 쓸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책 입안자들 또한 시민들의 에너지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 수급안정을 에너지 정책의 핵심으로 놓는다. 그들에게는 현재와 앞으로 수년간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국제적인 에너지 고갈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재생가능 에너지의 이용에 대해서도 그것이 해마다 증가하는 한국의 에너지 소비를 충족시키는 데 거의 기여할 수 없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실질적인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방안이나 정책을 수립하지 않는다. 명목상 대체 에너지 확대라는 이름을 걸고 몇가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러한 정책이 실제 재생가능 에너지 이용 확대를 위해서 기여하는 바는 거의 없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 노력하는 독일이나 덴마크 같은 나라에서 책택하는 두가지 전략은 에너지 소비 절약과 재생가능 에너지 이용의 확대이다. 독일의 경우 현재 일인당 연간 일차에너지 소비량은 석유로 환산할 때 약 4.1톤에 달한다. 이 양은 1970년대 중엽부터 거의 변화하지 않은 것인데, 그동안 독일의 경제성장과 경제규모가 크게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에너지 소비량은 변동이 없었던 것이다. 1970년대 초 독일의 소득 수준과 현재의 한국 소득 수준을 비교하면 둘 사이에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독일은 1970년대 이후로 에너지 소비가 거의 증가하지 않은 반면, 한국 정부에서는 앞으로 경제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에너지 소비도 그에 맞추어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독일이나 다른 선진국의 예를 분석하면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의 궤도에 다다른 후에는 에너지 소비와 경제성장의 상관관계가 없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성장이 계속되더라도 에너지 소비가 그에 따라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증가하지 않거나 감소하는 것이다. 물론 에너지 소비가 최대에 이르는 지점은 나라에 따라, 그리고 그 나라 정부와 국민들의 에너지 문제에 대한 인식 수준에 따라 다르다.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 최고 지점은 1970년대 초에 도달했고 지금까지 이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앞으로는 독일의 경우 장기 에너지 시나리오에 따라 소비가 크게 줄어든다. 한국의 경우 이미 이들 국가의 최대 소비 수준과 비슷한 수준의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한국에서도 더 이상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키지 않고도 경제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에너지 절약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준다. 독일의 장기 에너지 시나리오에 따르면 에너지 절약을 통해 소비량이 해마다 줄어들어서 2050년에는 일인당 연간 소비량이 1.64 석유톤으로 감소하게 된다. 이에 비해서 한국의 경우에는 소비량이 해마다 3% 정도 증가해서 2000년에 4.02 석유톤이던 일인당 연간 에너지 소비량이 2010년 경에는 약 6.5톤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경 독일의 일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연간 약 3.7톤으로 감소할 것인데, 이때가 되면 한국은 독일보다 일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거의 2배에 가깝게 늘어나는 셈이다. 또한 독일의 경우 3.7톤의 에너지 소비량 중에서 약 0.4톤을 재생가능 에너지로 충당할 계획이므로 일인당 연간 화석 에너지의 소비량은 3.3톤에 불과하게 된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6.5톤의 소비를 모두 화석 에너지로 공급할 계획이기 때문에, 2010년의 한국의 일인당 화석에너지 소비와 온실기체 배출량은 모두 독일의 2배가 된다. 한국에서는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전력의 경우에는 일인당 연간 생산량이 약 5700 킬로와트시로 독일의 6500 킬로와트시에는 못미치지만, 현재와 같은 추세대로 연간 10% 정도 증가하면 2001년에는 독일과 거의 같은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자원부와 한국전력에서 수립한 2015년까지의 장기전력 수급계획에 따르면 전력 소비는 해마다 3-7%씩 증가해서 2015년에는 일인당 연간 전력생산량이 10000킬로와트시에 육박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와 같이 끊임없는 증가를 전제로 수급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한국에서 에너지 고갈에 대한 관심과 대비가 얼마나 미미한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전체 에너지의 60%를 석유에 의존하고 있고, 이것을 모두 수입으로 충당한다. 1,20년 후에 석유부족 현상이 나타나면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심한 타격을 입으리라는 것이 자명하고, 그러므로 어서 속히 화석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고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 전환을 시급하게 준비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전환을 위한 준비는 전무한 것이 한국의 상황이다.
3. 신자유주의와 에너지 위기 신자유주의를 보는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 신자유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견해가 있지만, 여기서는 에너지 위기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해 평가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는 세계가 동서 냉전 체제로 갈라져 있던 동안 국가에 의해서 활동이 억제되어 왔던 자본을 사회주의 체제 몰락 이후 세계 시장을 무대로 아무 제한 없이 자기관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체제로 볼 수 있다. 사회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적대적 체제, 자본주의의 거울 같은 역할을 하던 체제가 존재할 때는 정치가나 자본가 모두 자본주의를 그나마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냉전 해체 이후 자본은 이제 아무 거칠 것 없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되었고, 단일화된 세계시장을 무대로 자연 환경을 최대로 착취하고 노동자들과 가난한 나라들을 마음껏 착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에너지 위기의 관점에서 볼 때 세계화(globalization)에 바탕한 신자유주의는 필연적으로 도래할 수밖에 없는 체제이다. 에너지 자원은 국지적으로 존재하고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산업국가들의 사회.경제체제는 바로 이와 같이 한정되어 있고 멀리 국지적으로 쏠려 있는 에너지 자원인 석유나 가스에 기반하고 있다. 이들 산업국가에서 석유나 가스는 산업사회 자체를 유지시키는 필수적인 재화로 기능하기 때문에, 이들 자원은 그것이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채취되어야 하고 운송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산업국가들의 전지구적인 화석 에너지 이용에 바탕을 둔 경제체제는 필연적으로 모든 경제 과정의 지구화를 낳을 수밖에 없다. 산업적 근대체제는 체제유지를 위해서 화석 에너지 자원을 얻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화석 에너지원의 필수성이야말로 진정으로 유일하게 세계화를 강제하게 하는 요소이다. 화석 에너지와 금속 지하자원에 대한 다양하고 점점 증대해가는 필요는 바로 국민경제가 왜 자급자족적인 것이 될 수 없게 되었느냐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다. 화석 에너지원을 소유하려는 산업국가와 자본의 욕구는 세계화의 소용돌이를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완제품이나 서비스의 생산입지는 얼마든지 지역적이 될 수 있다. 완제품과 서비스의 종류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나 이미 확립된 에너지 시스템은 변화하지 않고, 에너지 수요는 오직 생산성 향상과 절약을 통해서만 줄일 수 있다. 화석 에너지 자원의 생산 입지는 지구의 전 지역이 될 수 없다. 원유가 나오는 나라는 몇 나라에 한정되어 있다. 이는 화석 에너지 생산의 입지가 전 지구에 퍼져있는 지역이 될 수 없고, 특정 지역에 국한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화석 에너지에 기반한 산업문명은 이 특정 지역으로부터 반드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하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세계화와 세계 단일시장을 낳고 세계시장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신자유주의를 만들어낸다. 신자유주의에서는 지역에 기반한 경제는 파괴되어야 하는 것이다. 분산적, 분권적인 시스템으로 작은 규모로도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생산 시스템은, 세계 단일 시장에서 중앙집중형이면서도 세계 어디로나 뻗어갈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닌 거대 시스템에게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그러므로 지역에 기반한 분산적, 환경친화적 소규모 생산 시스템은 그것이 농업이든 수공업이든 첨단 기술이든 모두 신자유주의의 적대세력이고, 따라서 파괴와 제거의 대상일 뿐이다. 에너지 전환은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나 재생가능 에너지를 바탕으로 하려는 것이고, 재생가능 에너지는 화석 에너지와 달리 지구 전역에 분산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을 이용하는 기술도 화석 에너지를 이용하는 기술인 거대 화력발전소나 대규모 정유공장의 기술과 달리 크지 않은 기술이다. 풍력은 소형 풍력발전기를 가지고 지구 어디에서나 이용할 수 있고, 태양에너지는 넓이가 수십 제곱미터도 안되는 광전지나 집열판만 설치하면 전기나 난방.온수열로 전환된다. 소수력 발전기도 흐르는 작은 개울물에 설치하면 물의 흐름으로부터 전기를 얻을 수 있다. 이들 재생가능 에너지원은 모두 화석에너지 자원과 달리 중앙집중형이 아니라 분산적, 분권적인 기술 시스템, 에너지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재생가능 에너지는 전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그다지 크지 않고 첨단적이지 않은 기술을 적용하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화석 에너지의 경우와 달리 큰 권력, 큰 시장, 큰 기술이 필요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너지 전환은 거대 자본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고, 거대 기술을 극복하는 것이고, 세계시장 중심으로부터 지역시장 중심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도 아니고, 환경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인류문명의 운명과 관련된 과제인 것이다. 반면에 신자유주의는 중앙집중의 거대 기술 시스템과 네트워크형의 기술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이 시스템이 가장 잘 작동하는 세계 단일시장을 필요로 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전지구를 무대로 자기 마음먹은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global player)이 사방에서 나타나서 활동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속에서도 유연하고 분산적인 시스템이 자유롭게 작동하는 듯한 착각을 주기도 하지만, 이들 전지구적 활동분자들은 중앙집중형 시스템의 작동 논리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분산적, 분권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그러한 시스템 속에서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한 기술 시스템, 에너지 시스템은 세계 단일시장과 거대기술 시스템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와는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고, 따라서 신자유주의와는 적대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현재 `대안이 없다`는 구호를 내세우며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에너지 전환에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이다.
4. 에너지 전환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르면 10년, 조금 늦추어지면 20년이면 닥치게 될 세계적인 에너지부족에 대비하기 위해서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 전환을 지금부터 당장 준비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은 전력, 수송, 난방, 산업생산 등 에너지를 사용하는 모든 부문을 포괄하면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 중에서 전환의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은 전력부문이다. 전력부문은 기존의 화석 에너지와 거대기술 시스템에 기반한 에너지체제의 문제점을 가장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석연료가 아닌 원자력으로 전기를 생산함으로써 재생가능 에너지 이외의 다른 대안이 존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장기적으로 전체 발전량 중에서 원자력의 비율을 60% 이상으로 높이려 하고 있고, 그 이유로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을 들고 있는데, 이러한 방향으로의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 전환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원자력의 확대는 사람들에게 기존의 에너지 시스템이 그대로 존속될 수 있으며 따라서 에너지전환이 불필요하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에너지시스템 전환에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원자력에의 의존은 나중에 닥칠 에너지 위기로 인한 혼란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에너지시스템의 전환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재생가능 에너지가 중심으로 자리잡는 전력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 부문의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다른 분야에서의 전환도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는 바와 같이 정부산하 공사 소유로 되어 있는 발전시설과 송배전 시설들을 완전히 민영화하는 것이 전력 패러다임 전환의 한가지 방식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시스템의 확립을 위해서 그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검토해 보아야 한다. 정부의 계획대로 발전시설이 민영화되면 발전시장은 장기적으로 독과점의 형태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에서 발전부문을 여섯 개의 자회사로 나누고 그 중에서 원자력을 제와한 다섯개를 국내, 국외의 기업에 매각할 경우 매각된 발전회사들 사이에서는 경쟁관계가 형성될 것이고 이는 결국 발전회사들 사이의 합병을 낳게 되어 소수의 발전회사만 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살아남는 회사는 완전 경쟁이 도입된 전력 도매시장에서 전력을 가장 낮은 가격으로 가장 오랫동안 제공할 수 있는 회사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들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발전회사들은 도산된 후 거대 회사에게 먹혀버리거나 도산되기 이전에 팔려버리는 운명이 될 것이다. 거대 발전회사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들 사이에서는 과잉경쟁으로 인한 출혈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종의 담합관계가 형성되어 시장이 어느 정도 재편되면 서로 과점상태를 인정하면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몇 개 거대회사들이 발전시장을 과점하게 되고 시장은 여전히 명목상의 경쟁체제로 유지될 경우, 소형 발전업자들이나 개인 발전기기 소유자들이 발전시장에 끼여들 수 있는 틈은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전기를 낮은 가격으로 도매시장에 제공하는 거대 발전회사들과 이들 소형 회사들이 장기적으로 경쟁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너지전환과 관련해서 크게 우려되는 일은 이들 소형 발전업자나 개인 발전업자들의 배제가 재생가능 에너지의 배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소형 업자들이나 개인이 전통적인 소형 화력발전소를 가지고 발전 시장에 뛰어들 리는 없다. 이들은 대부분 몇 개의 풍력발전기나 태양광발전기, 소수력 발전기 또는 소형 열병합 발전시설을 운영하는 업자들일 터인데, 발전시장에서 이들이 배제되면 재생가능 에너지의 확산도 큰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거대 발전업자들의 처지에서도 일년 중에 이들 소형 발전기들로부터 생산되는 전기가 필요한 시간대가 존재할 수 있다. 한여름 냉방용 전기수요가 급증할 때 첨두부하의 일부를 소형 발전기들이 담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년 중 여름철 잠깐의 기간에 지나지 않는 이 시간대의 전기 수요를 위해서 거대 발전회사가 재생가능 전기 생산을 보호하리라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거대회사에서는 기저부하용 거대 화력발전소를 가동하면서 한여름에는 정전사태를 막기 위해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면서 첨두부하용의 중소형 가스화력발전소를 가동할 것인데, 이는 재생가능 에너지를 이용한 전력생산을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부에서 법적인 틀을 만들어서 재생가능 전기 생산업자들을 지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발전부문, 그리고 더 나아가서 배전부문까지 완전히 민영화된 상태에서는 민간업체에서 이러한 지원책이 자유시장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반론을 제기할 경우, 정부에서 정책을 관철시킬 힘이나 설득력 있는 논거를 지니지 못하게 된다. 예를들어 정부에서 재생가능 전기를 송배전회사에서 도매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도록 법적으로 규정하고 이에 따라 실제로 이러한 방식의 구매가 이루어지면, 거대회사들의 시장 점유율은 이들 재생가능 전기의 생산량만큼 줄어드는 셈이 되는데, 이에 대해서 거대회사들이 반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 거대회사는 재생가능 전기에 대해 화력발전 전기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일종의 특혜이고 따라서 시장에서의 경쟁을 왜곡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나아가서는 지원 법에 대해 위헌소송까지 제기할 것이다. 또한 재생가능 전기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화력이나 원자력전기에 대해 생태세(또는 환경세)를 부과하면, 이에 대해서도 거대회사들은 그러할 경우 전기가격이 불가피하게 상승하고 그 결과 국가 산업경쟁력이 약화된다고 주장하든가 그밖에도 온갖 복잡한 계산을 들이대면서 생태세 부과의 역기능이나 부당성을 부각시켜 생태세를 무로 돌리려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거대 민간발전회사들은 소형 재생가능전기 생산업자들의 존재를 용인하려 들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거대 발전회사들도 종종 상당히 큰 규모의 태양광발전시설이나 풍력발전단지를 건설해서 스스로 재생가능 전기를 생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들 회사가 재생가능 전기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근본 목적은 이들이 재생가능 전기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소규모 재생가능 전기생산자들을 배제함으로써 기존의 에너지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재생가능 전기의 자체 생산을 통해서 한편으로는 자기들도 재생가능 전기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일반 시민에게 과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 거대회사들이 또 다른 방식의 과시용으로 내놓는 그린 프라이싱(Green Pricing) 용의 전기를 조달한다. 그린 프라이싱이란 전력공급회사가 일반 고객에게 재생가능 전기를 공급하는 대신 그 대가로 다른 고객보다 높은 전기요금을 받는 것이다. 이 경우 고객은 약간의 돈을 더 지불하고 환경친화적인 전기를 사다 씀으로써 자신이 환경보호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전력회사는 자기 회사가 환경친화적인 전기를 생산하고 판매한다는 이미지를 일반 시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 그러나 대형 전력공급회사에서 그린 프라이싱으로 공급하는 전기의 비율은 전체 전기 공급량에 비해서 수백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양이고, 따라서 그린 프라이싱은 이미지 제고용의 명목상 제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그린 프라이싱은 소규모 재생가능 전기 업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빼앗아가버리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에 커다란 장애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그린 프라이싱 제도의 도입이나 재생가능 에너지를 일정량 이상 사용하도록 하는 포트폴리오 등의 강제 규정을 도입하면 거대 전력회사나 현재의 한전 같은 독점 전력회사를 통해서도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를 꾀할 수 있다는 주장은 에너지 전환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전력시장이 민간업자들에 의해 지배되는 상황에서는 재생가능 전기의 확대를 위한 법적인 틀의 도입에 대해 민간 전력회사들이 격렬하게 저항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서 이 틀을 관철시키란 쉽지 않은 일이 된다. 왜냐하면 국가의 개입능력은 민간업자들에게 전력과 관련한 많은 부문을 내어줌으로써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전력에 대한 지배권은 에너지 정책에 대한 지배권, 공공영역에 대한 지배권을 의미하는데, 전력에 대한 지배권의 상실은 이들 지배권의 상실도 의미한다. 전력의 지배권을 둘러싼 싸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산업국가의 전력생산은 모두 분산적으로 이루어졌고, 전력공급은 대체로 지방정부의 관할 하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 논리에 따라 정치적인 지원을 받은 거대 전력회사들이 형성되면서 이들 회사는 여러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소형 발전업자들을 먹어치우거나 도산시키고, 지방자치단체의 발전소와 전력망까지도 압력과 뇌물공여를 통해서 자기 손아귀에 집어넣는 공작을 벌여왔다. 독일에서 이들 회사는 지방정부에 압력을 넣고, 소형 발전업자들은 전선접근을 막거나 사보타지를 통해 압력을 넣음으로써 지배력을 확장해 왔다. 20세기 초 미국의 클리블랜드 시장 톰 존슨은 이러한 거대회사들의 전력지배권 확장공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독점업체를 시에서 소유해야 한다고 믿는다. 만일 당신이 이것을 소유하지 못하면, 그들이 당신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당신의 정치를 망칠 것이고, 당신의 제도들을 부패시킬 것이고, 결국은 당신의 자유를 앗아갈 것이다." 여기서 거대회사는 민간업체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 소유든 민간 소유든 이들 거대 전력회사는 소형 업자들, 지방자치단체의 전력회사를 통합하여 넓은 지역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지닌 전력 지배자로 성장해간 것이다. 전력 지배권의 집중과정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전력시장의 자유화로 지역독점과 국가독점이 깨어지면서 집중과정이 되돌려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오히려 여러 국가들을 아우르는 거대 시장이 형성됨에 따라 지금까지 하나의 국가 안에 갇혀 있던 거대회사가 초국적 거대회사로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만들어진 셈이다. 현재 유럽에서는 서유럽 전체와 동유럽의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발트 삼국 등을 연결하는 송전망이 형성되었고, 거대 전력회사들은 덩치를 더욱 키워 이들 나라를 넘나들면서 지금까지 일국 내에 제한되어 있던 전력 지배력을 여러 나라로 확장해서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발전부문이 민영화될 경우 해외자본이 참여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들 해외자본은 한국의 발전시장만을 보고 발전소를 매입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자본은 그들이 앞으로 형성될 것을 희망하는 세계 전력 단일시장에 한국시장이 편입될 것으로 전망하는 가운데 일본, 한국, 중국, 러시아를 포괄하는 동아시아 전력시장을 내다보고 한전의 발전 자회사들을 매입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해외 전력자본은 한전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자본력과 경쟁력을 가지고 한국 전력시장을 공략할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한국의 발전시장은 단기간 안에 이들에 의해 지배되고 그 결과 전력정책이나 에너지정책도 이들의 입김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한전에서 원자력발전소를 공사 소유로 유지하는 가운데 원자력발전을 크게 확대하는 정책을 지속하면, 원자력발전으로 생산되는 전력이 전체 전력의 50% 이상을 담당할 것이기 때문에, 민영화로 인해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질 위험은 어느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방침대로 장기적으로 송배전부문까지 민영화되면 정부가 전력정책의 측면에서 원자력발전만 가지고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크게 줄어든다. 에너지 전환과 관련해서는 원자력 부문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 원자력 발전이 에너지 전환에 장해물로밖에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전의 발전부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전의 발전부문을 민영화하는 것이 매우 곤란하다 하더라도, 지금까지와 같이 한전이 전력과 관련한 모든 사업을 독점하고 이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 자의적인 행동을 계속하도록 둘 수는 없다. 한전은 국가 전체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전원개발특례법 등을 무기로 발전시설의 건설, 송전선로 건설,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과 관련해서 큰 힘을 행사해왔다. 전선이 지나가는 지방정부 관할 도로의 이용료나 개인 토지 이용료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발전소나 송전탑의 건설부지를 강제로 수용하는 것 또한 불가피한 일이라고 주장해 왔다. 핵폐기장 건설의 경우는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치게 되자 유치공모 신청을 내게 해서 지역주민들을 이간시키고, 지역공동체를 갈등과 분열로 내모는 일도 서슴없이 벌이고 있다. 한전에서는 이러한 모든 일이 국가적 차원의 공익을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전기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전이 안정적인 전기공급을 이유를 내세워 공공성을 해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는 것은 한전의 사업활동이 전기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공익성만을 목표로 수행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게 만든다. 한전에서 전력생산과 특별한 연관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는 여러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고 통신사업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현재의 한전이 공익만을 따지는 공기업적 성격만 지닌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한전에서 전체 전력의 60%를 원자력을 통해서 공급하려는 것도 진정한 공익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은 전세계적으로 이미 낡은 기술로 판명난 것이다. 해외의 대형 원자로 건설회사들 중 상당수는 문을 닫았거나 원자력이 아닌 다른 분야로 사업방향을 돌린 경우가 많다. 이들 회사는 연료전지, 태양광 등의 신에너지 기술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또한 원자력발전소가 대형 사고의 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핵폐기물 처분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을 하던 여러 나라가 원자력발전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중수로를 개발한 캐나다조차도 원자력발전으로부터 서서히 손을 뗀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와 핵폐기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한전에서는 원자력발전을 대대적으로 확대해가고 있다. 현재 16기가 가동중이지만 2010년이면 거의 30기 가까운 원자로가 한반도 남쪽에서 전기와 더불어 핵폐기물을 내놓을 것이다. 만일 한전에서 진정으로 국가 전체의 공익성을 생각한다면 이와 같이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는 원자력에 집착하는 쪽으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영흥도 같은 작은 섬지역 한곳에 수백만 킬로와트의 유연탄 화력발전소를 집중적으로 건설하려는 것도 반드시 공공성에 입각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전의 발전부문을 해외자본이나 국내재벌에 매각하는 것이 전력에 대한 공공의 지배권과 에너지 정책의 성공적인 수행을 고려할 때 대단히 문제가 많다면, 한전 민영화는 철회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한전의 운영에서 공공성이 가장 우선시되는 것이 아니라면, 공공성을 크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한전의 개혁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의 개혁은 순수한 전력관련 분야를 제외한 다른 모든 자회사와 원자력을 과감하게 잘라내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발전소는 철저하게 공공성의 원칙에 입각해서 운영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논의했듯이 원자력 발전은 공공의 이익에 진정으로 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에너지 전환에 조금도 기여하는 발전 기술이 아니다. 그렇다면 원자력 발전은 궁극적으로 중단되어야 하고 그때까지는 가능한 한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할 터인데, 이는 현재 원자력 발전소의 민영화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를 민간에게 매각하는 것이 국가적 차원의 공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민영화를 통해서 원자력의 운영주체와 감독주체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 원자력발전의 위험과 핵폐기물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원자력발전소의 점진적인 폐기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소는 정부 산하의 한전에서 운영했고, 감독은 정부 부처인 과학기술부와 그 산하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에 의해서 이루어져왔다. 크게 보면 운영과 감독이 동일한 기관에 의해서 수행되어 온 것이다. 이 경우 감독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설사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졌다 해도 감독 결과가 은폐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은폐되거나 발표가 지연된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는 바로 운영주체와 감독주체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의 위험이 대단히 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계속해서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면 앞으로 대형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나 한전이 진정으로 공익을 생각한다면 원자력발전 정책을 전면 수정하고, 현존하는 원자력발전소에 대해서도 획기적인 조처를 도입해야 한다. 원자력발전은 더 이상 확대되어서는 안된다. 현재 가동중인 16기로 동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영주체와 감독주체의 분리를 통한 철저한 감독을 위해서 가동중인 원자로를 모두 민영화해야 한다. 핵폐기물 처분장도 건설 추진은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 민간업자가 수행하고 정부에서는 철저하게 감독하는 기능을 갖게 되면 사고의 위험도 줄일 수 있고, 처분장이 들어설 지역의 주민들도 지금까지와 같은 강한 반발로 일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민간이 선정한 처분장 건설 후보지에 대한 평가를 세밀하게 수행하면 되고, 그 지역이 가장 적합한 곳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주민들을 설득하거나 주민들과 민간업체를 중재하는 작업을 벌이면 된다. 원자력발전의 동결과 점진적인 축소를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소를 민간업체들에게 매각할 때 발전소의 수명이 끝날 때까지만 가동한다는 합의와 남은 수명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중에 수명연장으로 인한 분쟁의 소지를 없앨 수 있다. 이렇게 수명에 대한 규정이 확정되면 원자력발전소는 하나하나 폐쇄될 것이고, 30년 정도 지나면 최근에 완공된 원자로의 수명도 끝나기 때문에, 그때가 되면 한국에서 원자력발전소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이 위험하기 때문에 국가에서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마찬가지 이유에서 핵폐기물 처분도 국가가 관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자력발전 같이 위험한 사업을 민간에게 맡길 경우 이윤만 추구하는 민간업자들이 안전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형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운영기관과 감독기관이 동일하거나 유관한 경우에 더 커진다. 유럽 국가 중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국가가 운영하고 감독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프랑스와 영국이다. 민간이 운영하고 국가가 감독하는 대표적인 경우는 독일과 스위스를 들 수 있다. 이들 나라 중에서 원자력과 관련된 사고는 운영과 감독이 분리된 독일이나 스위스가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에서 더 많이 그리고 더 큰 규모로 일어났다. 독일에서는 원자력발전소를 민간 발전회사가 운영하지만 국가에서 철저하게 감독한다. 감독관은 불시에 원자력발전소를 방문하여 조사할 수 있고, 안전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요구하여 검토할 수 있다. 발전소는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감독도 받는다. 민간 환경단체에서도 지방정부의 위탁을 받으면 원자력발전소에 들어가서 조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감독이 철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민간회사에서는 세심하게 안전관리를 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사고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운영과 감독이 분리되지 않은 프랑스에서는 이미 매우 위험한 것으로 판명된 고속증식로가 국가 주도로 건설되었고, 완공된 고속증식로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여러차례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프랑스 정부에서는 고속증식로를 폐쇄하지 않고 끊임없이 재가동을 시도했는데, 결국은 1998년 녹색당 출신의 환경장관이 연립내각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고속증식로가 폐쇄되었다. 프랑스의 사례는 운영과 감독이 분리되지 않았을 때 더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고, 원자력을 적극 확대하려는 의도를 지닌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에서 1999년에 일어난 임계사고와 1997년에 일어난 몬주 고속증식로 사고도 민간이 안전관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사업들이 정부와 민간의 합동 사업이었고 따라서 정부가 철저하게 감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는 모두 민간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몬주 고속증식로나 핵폐기물 처분 및 재활용 계획은 민간과 정부가 합동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큰 사고가 민간 운영의 발전소가 아니라 정부가 관여하는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것이다. 원자력발전과 관련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원자력발전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받는다. 정부에서 원자력발전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 일본, 프랑스 또는 옛소련 같이 국가 전략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확대하려는 국가에서는 원자력발전의 위험 요소를 무시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사고 가능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옛소련 체르노빌 발전소의 초대형 사고가 바로 이러한 태도의 결과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국가의 에너지 수급이나 군사적인 면을 고려해서 원자력발전을 확대해 온 프랑스와 일본에서 큰 사고가 일어난 것도 우연은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에 대한 국가의 중립적 태도와 운영.감독의 분리가 필요한 것이고, 이는 한전 소유의 원자력발전소를 민간에게 넘김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를 제외한 수력과 화력 같은 나머지 발전소들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공공성의 원칙에 입각해서 한전에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발전시설의 일부가 국가의 관리 하에 두어진다는 것은 전기가 가장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전기는 현재 산업국가 국민들의 일상생활에서 물이나 식량보다 더 중요한 필수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은 적어도 적은 양이기는 하지만 비축이 가능하다. 물이 공급되지 않을 때는 이 비축량으로 몇시간이나 며칠까지 버틸 수 있다. 식량도 물과 마찬가지로 비축이 가능하기 때문에, 며칠 동안은 식량공급을 받지 못하더라도 대대적인 혼란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기는 비축이 불가능하다. 전선망으로부터 공급이 끊기면 전기로 움직이는 모든 것이 정지하고 만다. 그런데 전자시대로 들어와서 인간의 생활은 모든 면에서 전기가 없이는 한 순간이라도 제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냉장고, 텔레비전 등의 기본 가전기기와 자동응답기, 컴퓨터, 휴대전화, 팩스기기 등 통신기기는 물론이고, 난방용 보일러까지도 전기에너지가 공급되어야만 작동하기 때문에, 전기가 끊어지면 모든 생활이 마비되고 만다. 물도 전기의 힘으로 공급되므로 전기가 없으면 난방, 물 등 우리생활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모두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전기의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발전의 일부분을 국가에서 관할하고 통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전 소유의 수력이나 화력발전소를 민영화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업자들의 발전사업에의 진입을 허용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화 에너지와 LG복합화력 발전소 등 민간 발전소가 있지만, 앞으로도 발전시장에는 누구나 뛰어들어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재생가능 전기의 생산도 크게 고무될 수 있을 것이고,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 전환도 앞당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형 발전업자들은 물론 초기에는 전기를 전력공급회사에 판매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정부에서는 환경적, 국민경제적 측면을 고려해서 이들 업자들이 부당하게 손해를 입지 않도록 또는 적절한 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정도의 기간 안에 송전과 배전 부문도 민영화된다. 그러나 송전부문이 민영화되는 것은 공공성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신자유주의적인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재 존재하는 송전선로는 먼 곳에서 생산된 전기를 전달하는 기능밖에 지니고 있지 않다. 전달을 효율적으로 하고 있느냐는 것은 송전선 관리에 투입되는 인력이나 송전 과정에서 손실을 얼마나 줄이고 있느냐를 가지고 따져야 할 것이지만, 송전망의 효율적 운영이란 문제는 송전망이 누구에 의해 지배되느냐는 문제에 비하면 지엽적인 것이다. 송전망이 국가에 의해서 관할된다는 것은 에너지 정책적인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송전망은 차량 통행을 위해서 존재하는 국도와 같은 역할을 전기에 대해서 한다고 할 수 있다. 국도를 국가가 관할하는 것은 국가 전체의 교통정책이나 물류정책과 관련해서 포기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도로의 일부가 민영화될 경우 이는 도로 소유자와 민간 통행자들 사이, 국가와 도로 소유자 사이의 많은 분쟁을 유발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통행제한, 통행료, 통행금지 등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민간 도로소유자가 도로를 국가보다 훨씬 더 잘 관리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전체 교통 시스템의 차원에서 고려할 때는 도로를 민간이 소유하고 민간이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통정책의 수립에 저해요인이 될 수 있다. 송전망도 민간이 소유할 경우 관리가 더 잘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 송전망 통과라는 문제를 놓고 각종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있고, 발전과 일부 송전선이 어느 한 회사에 의해서 지배될 경우에는 이것이 국가의 에너지 정책수립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 계획에서는 궁극적으로 배전부문까지도 민영화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배전부문은 전기 소매업이고 소비자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문이다. 배전과정에서 전력 소매가격이 형성되면 소비자는 이 가격에 따라 전기를 사 쓸 수밖에 없다. 필수품인 전기를 소비자에게 직접 전해준다는 점에서 배전부문은 공공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배전부문을 민간에게 완전히 넘기면 이러한 공공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다고 해서 배전부문 전체를 한전이 독점하도록 하는 것은 재생가능 에너지로에 기반한 에너지 전환이라는 관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배전부문이 한전 지배하의 거대한 단위로 존재할 경우 전력판매는 하나의 전력공급행위나 단순한 영업행위 정도로 유지될 뿐, 전력판매를 통해서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다양한 시도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배전부문을 민영화한다고 그러한 시도가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간업자의 영업이익 창출만을 위한 행위가 에너지 전환에 기여하는 참신한 시도를 더 막아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배전부문은 공공의 지배하에 두되 규모를 현재보다 훨씬 작게 만들어 유연한 형태를 지니도록 해야 한다. 규모를 작게 하면서도 공공의 지배하에 둔다는 것은 현재의 배전부문을 잘게 쪼개어서 한전 산하로부터 지방자치단체 산하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이때 지자체에서는 전력공급 공사를 설립해서 전기소매를 담당하게 될 것이다. 지방공사로 나눌 경우 그 규모는 지방자치단체의 규모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대도시는 공사의 크기가 클 것이고, 중소도시는 도시 크기에 따라 공사의 규모도 줄어들 것이다. 몇 개의 인접 도시나 인접 군이 하나의 지방공사를 운영할 수도 있다. 규모가 작은 배전회사의 수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 지방의 특성에 따라 배전회사에서 풍력발전이나 태양광발전, 소수력 발전이나 조력발전, 바이오매스를 이용한 발전을 장려할 수 있고, 이로부터 얻어진 전기를 배전회사에서 전체 생산비를 보장하는 적정한 가격으로 사들이면 재생가능 에너지의 보급도 활성화될 수 있다. 재생가능 전기에 들어가는 지원금 성격은 소매가격에 반영하면 되므로 전기가격이 약간 올라가게 될 것이지만, 이는 그 지역의 전기자립이나 지역경제, 깨끗한 환경 등을 고려할 때 `건전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지방정부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소규모 열병합 발전소나 연료전지 발전 등도 지방공사에서 전략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공사로서의 배전회사의 존재는 더 나아가서 지방정부 차원에서의 에너지 (또는 전력) 정책 수립을 가능하게 해 줄 수 있고, 그럼으로써 장기적으로 온실기체 배출감소나 재생가능 에너지의 비율 증가 등을 꾀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방에 따라서 아주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 시행될 것이고, 이러한 다양하고 유연성 있는 정책들의 경쟁적 시행과 이를 통한 시행착오와 개선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한국 전체의 에너지 정책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배전부문을 지방정부로 넘기는 것은 단기간에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방정부마다 건전도, 재정능력, 에너지 위기에 대한 인식 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배전부문의 지방공사화는 조심스럽게 접근되어야 한다. 바람직한 방식은 한전의 배전부문을 한번에 모두 쪼개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지자체의 실정에 따라 조금씩 넘겨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배전부문이 대부분 지자체 산하로 되어야 하겠지만, 지자체에서 준비된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을 때 넘겨지는 것이 발생가능한 문제들을 최소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지자체에서의 준비란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위에서 스스로 재생가능 전기의 확대를 위한 정책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재생가정 전기 생산을 고무하는 정책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배전사업을 인수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배전부문을 정부에서 강제로 일률적으로 지자체에 떠맡기거나, 지자체에서 재정적인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에서 떠맡는 것은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지자체에서 배전부문을 관리할 기술적인 능력이 있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심각하게 고려할 사항은 아니다. 배전부문이 넘겨짐과 동시에 기술인력도 지자체 산하 지방공사로 옮겨갈 것이고,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면 한전에서 기술을 이전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자체에서 재생가능 에너지 이용의 활성화와 에너지 전환을 위해 배전사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에너지 전환은 정부가 전국적인 차원에서 주도한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받쳐 주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 수립된다고 해도 에너지 전환이 성공하기는 어렵다. 재생가능 에너지는 중앙집중형 기술을 통해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곳에 집중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분산적인 기술과 분권적인 관리 시스템을 통해서만 적절한 이용이 가능하다. 정부에서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정부(또는 한전) 스스로 전국 곳곳에 풍력발전기를 세우고, 태양광 발전시설을 세울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재생가능 에너지의 확대는 정부의 지원정책과 이에 호응할 자세가 갖추어져 있는 많은 시민들이 존재할 때 가장 잘 이루어질 수 있다. 주택 소유자들, 아파트 입주자들이 에너지 전환의 절박성을 잘 알고 있다면, 이들은 정부에서 적절한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정책을 내놓을 때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지붕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할 것이기 때문이다. 풍력발전기의 설치도 각성한 시민들이 많아져서 이들이 적극 참여하면, 정부나 한전이 주도할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수가 세워질 수 있다. 농지나 임야 소유자들 중에서 에너지 위기에 대해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지면 풍력발전기 건설 부지를 임대하는 문제도 쉽게 해결될 것이다. 그러므로 재생가능 에너지 이용이 활성화나 에너지 전환은 전국적인 전력 독점체제 하에서 중앙집중적인 방식이 아니라 분산적, 분권적인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것이다. 배전부문의 지방공사화는 바로 이와 같이 분산적, 분권적인 방식을 고무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역차원의 배전사업은 작은 단위에서 에너지 문제에 대해 각성한 시민과 지방정부가 함께 에너지 전환을 꾀하기 위해서 필요한 중요한 수단이다. 어느 지역에서 시민들이 에너지 전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이들의 요구에 부응해서 지방정부에서도 지역 차원의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 정책을 펴려고 할 때, 배전사업이 지방공사 소관으로 되어 있다면 지역에서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매우 넓어진다. 주민들이 자기 돈을 투자해서 지붕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할 자세가 되어 있고, 지방정부에서는 여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생산비를 보장해주는 가격으로 구입하는 정책을 편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 지붕에 태양광 발전기를 올릴 것이다. 주택 소유자가 투자할 돈은 없지만 에너지 전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일 경우에는 지방정부에서 그 주택의 지붕을 빌려서 발전기를 설치하는 정책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풍력발전이나 소수력 발전에 대해서도 생산비보장 구입정책을 편다면 이러한 시설들도 크게 확대할 수 있다. 국가 차원이나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재원을 마련해서 태양광 발전시설이나 풍력발전기 건설을 위해 투자를 할 수 있지만, 이 재원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고 건설 후의 관리도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스스로 투자하고 이들이 생산한 전기가 적정한 가격으로 지속적으로 매입되면 재원확보나 관리가 국가가 주도하는 경우보다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지자체 중에서 제주는 풍력발전을 적극 늘리려 하고 있고, 광주는 태양광 발전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전력사업이 지금과 같이 한전의 독점 구조로 유지되거나 민간업자가 넘겨받게 되면 이들 지자체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일정한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한전이나 민간 배전업자가 재생가능 전기의 구입가격을 다른 발전기보다 낮게 책정하거나 아예 구입을 거부하면 지자체나 시민들이 세운 풍력발전기와 태양광발전기는 자가발전용 구실밖에 하지 못하게 된다. 거의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지자체에서 풍력발전이나 태양광발전을 적극 확대하려 한다면 배전사업을 인수해서 운영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배전부문을 지자체로 넘긴다고 해서 이 부문에의 민간업자 진입을 완전히 금지할 필요는 없다.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하겠지만, 전력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대형 공장이나 건물에서는 배전사업을 하는 지방공사를 거치지 않고 발전업자와 직접 계약해서 전력을 공급받는 것이 지역 전체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또는 대형 공장이나 건물들에 민간 배전업자가 발전업자를 중개해서 직접 전기가 공급되도록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전선망을 빌려주는 지방공사에서는 적정한 전력통과 수수료를 받으면 된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민간업자의 배전부문 진입을 막을 필요는 없다. 이미 배전망은 지방공사 소유로 되어 있고, 배전망의 설치 자체가 지방자치단체 관할로 넘어가게 되면 민간업자의 배전사업은 지방자치단체의 엄격한 통제를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가지 중요한 점은 지방공사 소유의 배전회사가 민간업자에게 넘어갈 수 없도록 법적인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업자가 배전을 소유하게 되면 전력 지배권은 민간업자에게 완전히 넘어가게 되어 전력의 공공 지배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간업자의 배전사업에의 진입은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전선망은 지방공사가 소유하고 이들 민간업자에게는 적정한 사용료를 부과함으로써 통제권을 행사하는 방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5. 맺음말 정부의 한국전력 민영화 계획은 정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한국 전력시장의 세계시장으로의 편입을 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력의 민영화는 공공성이 강한 전력생산과 판매가 거대 자본의 손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국가 차원의 에너지 정책, 더 나아가서는 에너지 전환을 매우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한전의 전면 민영화를 통한 전력산업 구조개편 계획은 철회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전이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한국전력에 의한 전력사업의 완전한 독점구조는 공공성의 측면에서나 에너지 전환의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원자력의 무분별한 확대나 한 지역에 화력발전소를 집중해서 건설하는 계획 등은 모두 한전이 전력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전력회사가 지역 단위로 나뉘어져 있다면, 원자력발전소가 몇 군데에 집중적으로 세워지거나 유연탄 화력발전소가 영흥도에 수백만 킬로와트가 건설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배전부문이 여러개의 지방공사로 나뉘어 있다면 풍력이나 태양광을 이용해서 또는 열병합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가 생산비에 크게 못미치는 가격으로 매입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현재 석유 등의 화석에너지 매장량을 고려할 때 한국에서도 에너지 전환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의 중단과 배전부문의 분할을 통한 한전의 구조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전력소비 현황으로 미루어볼 때 원자력발전의 중단은 점진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것인데, 이는 원자력발전소의 민영화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배전부문의 분할 방식으로 바람직한 것은 한전의 배전사업을 지자체 산하로 넘기는 것이다. 지자체 산하 지방공사에서 배전사업을 수행하면, 지역 중심의 분산적, 분권적인 시스템 하에서 가장 잘 이루어질 수 있는 재생가능 에너지의 이용도 활발해질 것이다. 원자력발전의 민영화나 배전부문의 지자체로의 이관이 현재 한국의 전력생산구조나 지자체의 상황에 비추어볼 때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만을 고려해서 한전을 정부 계획에 따라 완전히 민영화하는 것은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을 것이고, 이는 결국 1,20년 후 화석에너지 부족 현상이 나타났을 때 한국사회가 아무 준비도 없이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한전을 민영화하는 것이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 당장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좀더 긴 시각을 가지고 에너지 전환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세계에 화석 에너지 부족 사태가 몰아닥쳤을 때, 국가가 위기에 빠지지 않고 이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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